진먼의 전지사화
진먼의 경치, 전지의 정
금성탕지처럼 견고하여 바다문을 지키는 곳
진먼은 우저우, 혹은 셴저우, 우장, 창우 등이 옛 명칭이 있습니다. 명나라 홍무21년(1388년)에 장샤허우 주덕흥이 천가구의 성을 지어 <금성탕지처럼 견고하여 진해문을 지키는 곳>이라는 말에서 <진먼(금문)>이라는 지명이 탄생하였습니다.
고고학 자료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약 6천년전 진먼섬(금문도)에 사람이 활동했던 유적이 있는데, 진나라 5호16국시절 중원의 선비들이 이방인들에게 굴복하기를 거부하여 민남지역으로 옮기다가 진먼섬에 몸을 숨겼다고 합니다. 당 덕종 정원년에 취엔저우에 무마취 5처를 두었는데 진먼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송나라때는 산과 바다의 이익을 개발하였고, 명나라때는 수어천호소를 설치했으며, 청나라때는 진총병을 두었습니다. 민국 4년(1915년)에 진먼에 현정부를 두고 통치하기 시작했습니다.
공고한 해안방비, 전지사화
민국 38년(1949년)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내려온 이후, 진먼은 50여년간 전지의 역할을 도맡으며 타이완해협 양안의 군사력을 겨루는 전장이 되어, <구닝터우 대전>, <다얼단 전쟁>, <93포전>, <823포전> 그리고 <617포전>을 겪었습니다.
전시기간의 진먼은 군민이 공동으로 전지를 건설하였습니다. 오늘날 볼 수 있는 울창한 숲 속의 전시용 차도, 들판에 흩어져 있는 공수 방어용 목침, 도로 중앙의 공수 방어용 참호, 웅장한 지하전시갱도, 엄숙하고 경건한 해안 궤이탸오자이등의 군사방어용 및 위장용 설비는 현재 과거 냉전의 기념비가 되었으며, 여행객들이 전지의 역사 궤적을 이해할 수 있는 명소가 되었습니다.